성경을 어떻게 읽을 때 보다 풍성한 이해가 가능한지 생각해 보자.
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이 너무 싫을 때,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 든다”라고 불평한다. 그런가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그 사람은 참 진국이다”라고도 말한다. “하나부터 열까지”라는 표현은 어느 한 부분이 좋고 싫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에 대한 평가를 의미한다. 이처럼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강조하는 것이 바로 성경통독의 개념이다.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통독’이라는 읽기 방법이 있었다. ‘통독’이란 “전체를 꿰뚫는다”라는 의미의 ‘통’과 “책을 읽는다”라는 의미의 ‘독’을 결합한 말이다. 즉, 통독이란 전체를 꿰뚫어 읽는다는 의미이다.
성경을 읽을 때 한 측면에서 한 방법만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요소를 모두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읽어야 한다. 영어에 Total이나 Whole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이는 부분들의 단순한 합을 의미한다. 반면에 한국 교회가 강조하는 통독은 단순한 부분의 합을 뛰어넘어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개념을 담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이와 같은 개념을 담아 통독하면 성경 문맹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를 1년, 출애굽기를 1년, 계시록을 1년씩 공부해서 66년을 보내는 것보다, 성경 1권을 통으로 제대로 읽으면서 66년 동안 깨닫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수 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기 때문이다.
성경통독이 유익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성경을 입체적, 통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다 보면 맥이 끊어지는 지점들이 나온다. 성경을 통독하다 보면 그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점이 선이 되고, 그 선이 면이 되고, 면이 다시 입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해 줄 것이다.
둘째는 이단의 공격을 분별하여 대처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단의 전술은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이다. 성경통독은 전체에 성벽을 튼튼히 쌓으므로 이단 사이비가 들어올 틈을 막을 수 있다.
셋째는 실수를 줄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를 놓치고 성경을 읽다 보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이 길어진다. 물론 나중에는 ‘헤맨 길도 길’이라고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겠지만 성경 탐구의 시간 싸움에서는 뒤처지게 된다.
성경통독은 성경 전체의 그림을 먼저 머릿속에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세부적인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